7월 하순의 글 - 7월 28일, 2019
과거에 비해 더 많이 가진게 분명한데.....
더 많이 깨지고 더 많이 아파한다. 더 많이 슬퍼지고 행복하지 못하다.
왜 일까?
마틴 부버는 현대인이 '나와 당신'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그것(물건)'의 관계로 살아간다고 안타까워 한바 있다. 물질 만능주의속에 사람이 일종의 물건처럼 취급되는 반사회적 풍토와 잘못된 가치가 지배해서 인지 모른다. 초가집 단칸방에서 양푼에 밥을 비벼먹고 뚫려있는 지붕사이로 별빛마저 스며들던 그 시절이 그래도 오히려 좋았다고 느껴진다. 덜 가졌지만 오히려 더 많이 가졌었다. 지금은 더 많이 가졌는데 덜 가지게 되었다. 더 많이 가진것이 문제의 뿌리가 아닐까?
이런 트렌드가 두렵게도 서서히 어린 세대속에 흘러서 유전자화 되가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더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백상창 박사의 부부사랑학에 의하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선 어릴때 정신적 상처와 그로 인해 왜곡된 감정을 정리하고, 부모와 집착적 유착을 끊어 독립된 존재가 되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와 왜곡에서 오는 아픈 감정과 부모와의 집착적 유착을 굿바이 하지 않는한, 성인이 되고 결혼 생활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 거기서 파생되는 고통스런 삶은 고스란히 자신과 사회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호프다. 덜 갖되 더 많은 것을 갖도록 훈련하고, '나와 그것'의 관계를 '나와 당신'의 관계로 회복하고, 어릴적 상처받은 감정과 부모의 유착을 끊어내어 행복한 성인을 준비하는 눈물겨운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호프는 아이들을 영어좀 잘하고 수학 문제 좀 몇개 더 푸는 학습 기계화 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호프는 성적 지상주의에 의한 대학 입학이 목표가 아니라, 참교육 생명교육 삶교육으로 바꾸는 현장이다. 호프는 정신과 영을 다루는 학교이다.
돈이 없어서, 살만한 아파트가 없어서, 학교의 시설이나 프로그램 시스템이 없어서, 아이들이 아파하고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것을 다 가졌음에도 가치와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호프는 삶의 가치와 인생의 뿌리를 다루는 학교이다.
그러기에 방학이후 돌아온 후, 꼬박 일주일 동안, 호프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스템 프로그램 규칙, 이런 피상적인 껍데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정신과 영을 만지는 놀라운 시간들을 갖는 중이다. 이성, 핸드폰, 게임등 산적해 있는 인생의 방해물들에 대해 컨트롤/브레이크를 걸 수 있게 훈련을 하는 중이다. 이런 것들에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면,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인생은 달리면 달릴수록 더 위험하게 되고, 달리는 것 자체가 위험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 크리스찬 부모들은 열심히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때로 그 기도가 많이 잘못되어 있다.
과속하면서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과소비 하면서 부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과로하면서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과음 과식하면서 위를 튼튼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과보호 하면서 안전하게 해달라 기도하고, 아이들을 과식시키면서 건강하게 해달라 기도하고, 아이들을 과하게 짓밟으면서 사랑 받도록 기도한다. 미안하지만 응답은 없으리라. 하나님이 응답 없는게 아니라, 이런 기도가 응답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작금의 이 사회는 유래없이 위험한 사회이다. 이런 무서운 사회에서 안전은 부모의 과보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안전은 역설적으로 아이들을 부모가 보호하지 않음에서 나온다. 그럴때 아이들은 스스로 강하게 되어 스스로를 지킬수 있을 만큼 강하게 된다. 아이들은 언젠가 부모를 떠나 이 위험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좋은 부모라면 위험하지 않는 부모품에 있을때, 아이가 스스로 강해지도록 보호를 멈춘다. 그러면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터득한다. 세상에 나가 스스로를 지킬 힘은 부모의 과보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힘에 있다. 세상에선 부모가 아이를 더이상 보호 해 줄 수가 없다.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 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들과 작금의 학교는 거꾸로 한다. 가장 좋은 예방제/보호막은 바로 자신의 힘이다. 그래서 호프다.
호프에 있음이 행복이고 축복이다. 부모가 불안해 하거나 아이곁을 맴돌거나 아이의 상태를 늘 확인하면, 아이는 불안하고 경계심이 많은 사람으로 자라난다.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외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부모의 권위는 중요하지만 권위적이여서는 안된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고 나의 기대치를 올리라. 아이들을 올리려 하지 말고 나를 올리라. 아이보고 행복하라고 말하지 말고, 부모가 행복하라. 그러면 아이들도 따라서 올라 올 것이다.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이고, 자기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당당하게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의 실현은 세상 교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신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호프다. 세상은 나의 단점을 보지만 하나님은 나의 장점을 보시기 때문이다. 호프 아이들은 완전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남이 아니라 내 자신과만 경쟁하며, '나 자신이 되는 것' 만 노력만 하면 된다.
아이 교육의 성공 여부는 '아이가 얼마나 일류대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느냐? 즉 무엇을 성취 했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 그리고 다른 사람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대우 하느냐?'에 의해서 판가름 난다. 호프는 아이를 사람다움으로 키워낸다. 그래서 호프다, 그러니 호프 부모들도 끊임없이 '호프화' 되어 가야 한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완전을 향해 달려야 한다. 호프는 학교가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삶이다. 호프화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아이의 발전을 거부하는 것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33장 2-3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잠언 17:22)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왜냐면 최고의 치료는 하나님, 시간, 인내이기 때문이다.
호프에 와 있는 아이들 걱정하지 말라. 부모의 삶이나 걱정하라. 호프는 하는 곳이니까 될 것이고, 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아이들은 한국에 있는 부모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 걱정으로 울고 있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그러기에 부모도 진화하자. 그 진화의 동력은 아이들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호프라는 삶이다.
얼마전 읽은 글이다.어느 주일날 교회를 잘 다니던 한 부부가 교회가기전에 심한 말다툼을 하였다. 남편이 교회에 갈 기분이 아니라고 골프채를 들고 나갔다. 화난채로 골프를 너무 세게 치다 뒷땅을 쳐서 갈비뼈에 금이 갔다. 그 소식을 접한 아내가 대뜸 말했다. '거봐, 주일날 교회는 안가고 골프장에 가니 벌받은 거지' 언뜻 들으면 남편 위하는 소리 같고, 신앙적인 말 같지만 이말을 듣고 반성하고 깨달을 남편은 없을 것이다.
진짜 현숙하고 지혜로운 아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보 많이 아프겠어요. 내가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해서 이렇게 된것 같아 미안해요.'
그렇게 따뜻하게 위로하면 남편도 감동받아 뉘우치며 이렇게 대답을 할것이다.
'당신이 무슨 잘못이요. 주일에 교회 가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 18장 21절)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주고 받는다. 말은 소리가 아니라 나의 인격이고 생각이며, 뜻이고 꿈이고 사랑이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혀에서 부터 시작한다. 서로를 축복하자. 그리고 호프를 축복하자.
----새학기 맞이 일주일을 보내며, 이영석 목사 단상 글 -----
7월 하순의 글 - 7월 28일, 2019
과거에 비해 더 많이 가진게 분명한데.....
더 많이 깨지고 더 많이 아파한다. 더 많이 슬퍼지고 행복하지 못하다.
왜 일까?
마틴 부버는 현대인이 '나와 당신'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그것(물건)'의 관계로 살아간다고 안타까워 한바 있다. 물질 만능주의속에 사람이 일종의 물건처럼 취급되는 반사회적 풍토와 잘못된 가치가 지배해서 인지 모른다. 초가집 단칸방에서 양푼에 밥을 비벼먹고 뚫려있는 지붕사이로 별빛마저 스며들던 그 시절이 그래도 오히려 좋았다고 느껴진다. 덜 가졌지만 오히려 더 많이 가졌었다. 지금은 더 많이 가졌는데 덜 가지게 되었다. 더 많이 가진것이 문제의 뿌리가 아닐까?
이런 트렌드가 두렵게도 서서히 어린 세대속에 흘러서 유전자화 되가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더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백상창 박사의 부부사랑학에 의하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선 어릴때 정신적 상처와 그로 인해 왜곡된 감정을 정리하고, 부모와 집착적 유착을 끊어 독립된 존재가 되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와 왜곡에서 오는 아픈 감정과 부모와의 집착적 유착을 굿바이 하지 않는한, 성인이 되고 결혼 생활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 거기서 파생되는 고통스런 삶은 고스란히 자신과 사회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호프다. 덜 갖되 더 많은 것을 갖도록 훈련하고, '나와 그것'의 관계를 '나와 당신'의 관계로 회복하고, 어릴적 상처받은 감정과 부모의 유착을 끊어내어 행복한 성인을 준비하는 눈물겨운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호프는 아이들을 영어좀 잘하고 수학 문제 좀 몇개 더 푸는 학습 기계화 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호프는 성적 지상주의에 의한 대학 입학이 목표가 아니라, 참교육 생명교육 삶교육으로 바꾸는 현장이다. 호프는 정신과 영을 다루는 학교이다.
돈이 없어서, 살만한 아파트가 없어서, 학교의 시설이나 프로그램 시스템이 없어서, 아이들이 아파하고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것을 다 가졌음에도 가치와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호프는 삶의 가치와 인생의 뿌리를 다루는 학교이다.
그러기에 방학이후 돌아온 후, 꼬박 일주일 동안, 호프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스템 프로그램 규칙, 이런 피상적인 껍데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정신과 영을 만지는 놀라운 시간들을 갖는 중이다. 이성, 핸드폰, 게임등 산적해 있는 인생의 방해물들에 대해 컨트롤/브레이크를 걸 수 있게 훈련을 하는 중이다. 이런 것들에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면,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인생은 달리면 달릴수록 더 위험하게 되고, 달리는 것 자체가 위험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 크리스찬 부모들은 열심히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때로 그 기도가 많이 잘못되어 있다.
과속하면서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과소비 하면서 부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과로하면서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과음 과식하면서 위를 튼튼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과보호 하면서 안전하게 해달라 기도하고, 아이들을 과식시키면서 건강하게 해달라 기도하고, 아이들을 과하게 짓밟으면서 사랑 받도록 기도한다. 미안하지만 응답은 없으리라. 하나님이 응답 없는게 아니라, 이런 기도가 응답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작금의 이 사회는 유래없이 위험한 사회이다. 이런 무서운 사회에서 안전은 부모의 과보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안전은 역설적으로 아이들을 부모가 보호하지 않음에서 나온다. 그럴때 아이들은 스스로 강하게 되어 스스로를 지킬수 있을 만큼 강하게 된다. 아이들은 언젠가 부모를 떠나 이 위험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좋은 부모라면 위험하지 않는 부모품에 있을때, 아이가 스스로 강해지도록 보호를 멈춘다. 그러면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터득한다. 세상에 나가 스스로를 지킬 힘은 부모의 과보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힘에 있다. 세상에선 부모가 아이를 더이상 보호 해 줄 수가 없다.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 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들과 작금의 학교는 거꾸로 한다. 가장 좋은 예방제/보호막은 바로 자신의 힘이다. 그래서 호프다.
호프에 있음이 행복이고 축복이다. 부모가 불안해 하거나 아이곁을 맴돌거나 아이의 상태를 늘 확인하면, 아이는 불안하고 경계심이 많은 사람으로 자라난다.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외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부모의 권위는 중요하지만 권위적이여서는 안된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고 나의 기대치를 올리라. 아이들을 올리려 하지 말고 나를 올리라. 아이보고 행복하라고 말하지 말고, 부모가 행복하라. 그러면 아이들도 따라서 올라 올 것이다.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이고, 자기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당당하게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의 실현은 세상 교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신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호프다. 세상은 나의 단점을 보지만 하나님은 나의 장점을 보시기 때문이다. 호프 아이들은 완전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남이 아니라 내 자신과만 경쟁하며, '나 자신이 되는 것' 만 노력만 하면 된다.
아이 교육의 성공 여부는 '아이가 얼마나 일류대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느냐? 즉 무엇을 성취 했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 그리고 다른 사람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대우 하느냐?'에 의해서 판가름 난다. 호프는 아이를 사람다움으로 키워낸다. 그래서 호프다, 그러니 호프 부모들도 끊임없이 '호프화' 되어 가야 한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완전을 향해 달려야 한다. 호프는 학교가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삶이다. 호프화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아이의 발전을 거부하는 것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33장 2-3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잠언 17:22)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왜냐면 최고의 치료는 하나님, 시간, 인내이기 때문이다.
호프에 와 있는 아이들 걱정하지 말라. 부모의 삶이나 걱정하라. 호프는 하는 곳이니까 될 것이고, 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아이들은 한국에 있는 부모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 걱정으로 울고 있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그러기에 부모도 진화하자. 그 진화의 동력은 아이들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호프라는 삶이다.
얼마전 읽은 글이다.어느 주일날 교회를 잘 다니던 한 부부가 교회가기전에 심한 말다툼을 하였다. 남편이 교회에 갈 기분이 아니라고 골프채를 들고 나갔다. 화난채로 골프를 너무 세게 치다 뒷땅을 쳐서 갈비뼈에 금이 갔다. 그 소식을 접한 아내가 대뜸 말했다. '거봐, 주일날 교회는 안가고 골프장에 가니 벌받은 거지' 언뜻 들으면 남편 위하는 소리 같고, 신앙적인 말 같지만 이말을 듣고 반성하고 깨달을 남편은 없을 것이다.
진짜 현숙하고 지혜로운 아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보 많이 아프겠어요. 내가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해서 이렇게 된것 같아 미안해요.'
그렇게 따뜻하게 위로하면 남편도 감동받아 뉘우치며 이렇게 대답을 할것이다.
'당신이 무슨 잘못이요. 주일에 교회 가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 18장 21절)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주고 받는다. 말은 소리가 아니라 나의 인격이고 생각이며, 뜻이고 꿈이고 사랑이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혀에서 부터 시작한다. 서로를 축복하자. 그리고 호프를 축복하자.
----새학기 맞이 일주일을 보내며, 이영석 목사 단상 글 -----